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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지 순례

부산교구 조씨 형제 묘 – 창녕 조씨 형제, 순교, 묘지 단장, 결론

by 황금빛 이삭 2024.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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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구 조씨 형제 묘

창녕 조씨 형제

부산시 강서구 생곡동 배씨(裵氏) 가문 선산에는 조씨(曹氏) 성을 가진 형제의 묘가 있습니다. 순교자 조씨 형제는 경남 김해 삼방동 출신으로 청년 조석빈과 조석증입니다. 형제 유해가 문중 선산에 묻히지 못하고 선산을 앞에 둔 배 씨 선산에 묻혀 있습니다. 석빈과 석증 형제는 뼈대 있는 유교 집안이었던 창녕 조씨 가문에서, 부친 조대연의 셋째와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조씨 형제는 나이와 모습이 달랐지만 둘 다 학문과 인품이 뛰어났습니다. 박해 시대에 가재와 전답을 몰수당하고, 생곡 마을 정삼품 통정대부 배정문의 동서 학당에 은신하면서, 유학과 서학을 비교 연구했습니다. 한문 성경을 감춘 나무 상자를 메고 양반 집안을 찾아다니면서 천주학을 전교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순교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2년 뒤 무진년에 석빈과 석증 형제는 가락면 상덕리 편도 부락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동래 아문으로 끌려가 관헌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하지만 배교를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어 1869년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했습니다. 고문을 하는 사람조차도 이들의 굽힘 없는 신앙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먼저 조석빈은 두 팔을 옆으로 올려 십자로 서서 미소를 지으며 목이 잘렸고, 형 석빈을 가차 없이 참수하고 나서 관헌은 동생 석증에게 회유와 협박으로 배교를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형의 목에서 솟아오른 피를 두 손에 받아 들고 형님 목에 십자가 꽃이 피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자기도 빨리 참수해 주기를 간청했습니다. 마침내 동생도 목을 떨구어 형제가 함께 순교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순교 후 이들의 시신을 가까운 사람들이 운반해 조씨 선산에 묻으려 했습니다. 문중에서 반대해 묻히지 못한 채 방치되었는데 고() 배문한(裵文漢) 신부의 3대조 배정문(裵禎紋) 공이 집 뒤 언덕 밭에 암장했습니다. 그 후 120여 년간 배문한 신부 본가에서 4대에 걸쳐 순교자 조씨 묘를 관리해 오고 있습니다. 부산광역시 강서구 생곡동 272번지 형제 순교자 기념관에는 시신을 덮었던 개석과 고서적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묘지 단장

경남 김해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1801년 신유박해 때입니다. 경상도 지역뿐 아니라 전국에서, 천주교도들을 징계하려고 보낸 귀양길이 유배지에 복음을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섭리였는지도 모릅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창녕 조씨 두 형제는 1870년경까지 천주교 연구와 전교를 열심히 하다가 병인박해 때 사학 죄로 참형당한 순교자입니다. 천주교 부산교구에서는 1989619일과 20일 이틀 동안 형제 묘를 발굴했습니다. 유골을 부산대학교 치의학 교실에 의뢰해 감정했습니다. 부산 교회사연구소 소장 송기인 신부 주관으로 병인박해 여파로 순교한 조석빈, 석증 형제의 묘를 조성하고 화강암 십자가를 세운 뒤 검은 돌 비석을 만들고 주위를 성역화했습니다. 묘역 주위를 순교 공원을 조성했습니다. 2012529일 오전 11시 이갑수 주교와 사제단 공동으로 단장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결론

저는 오래전에,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며 어렵게 조씨 형제 순교자 묘지를 찾아갔습니다. 부산시에 있으나 바닷가 한적한 마을에 있었습니다. 묘도 묘지만 더 반가웠던 점은 고 배문한 신부님 생가터를 알게 된 사실입니다. 생가터와 묘지는 같은 울타리 안에 있습니다. 고 배문한 신부님은 19348월 현재 부산 강서구 생곡동인 경남 김해군 녹산면 생곡리에서 출생했습니다. 1960년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61년 가톨릭대학교에 입학, 1964년에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으로 유학 갔다가 1970년 로마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게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1973년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 후에 여주 본당 주임, 광주 가톨릭대학교 교수, 서정동 본당 주임, 수원가톨릭대학장, 초대 대학원장을 지냈습니다. 199485일 강원도 삼척시 바닷가에서 물에 빠진 교우들을 구하고 선종했습니다. 배문한 신부님은 어릴 적부터 조씨 형제 순교자 묘지를 보고 그곳에서 놀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거룩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방문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고 배문한 신부 생가 순교비 옆에는 신부께서 남기신 글귀가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순교의 피가 흘러흘러 나를 신자 되게 하고, 순교의 한이 맺혀맺혀 나를 사제되게 하였도다.'(1989년 5월 17일, 배문한)

 

위치 : 부산광역시 강서구 생곡길 26번길 9-19 (생곡동 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