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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지 순례

성소 못자리 합덕성당 – 합덕성당의 역사적 의의, 건축, 참고, 끝내며

by 황금빛 이삭 2024.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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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덕 성당 위에서 내려다 본 전경

합덕성당의 역사적 의의

합덕성당 혹은 당진합덕성당은 충남 당진시 합덕읍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습니다. 충남 당진은 신라 때 당나라로 향하던 관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당진'이라 불렸습니다. 중국으로 건너가는 문이었던 당진은 천주교 성지가 많아서 순교자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성지순례 해도 좋은 곳입니다. 조선 천주교 신도 반은 충청도에 살았고 반은 천주교 중심지 이곳 당진 내포 지방 사람들이었습니다. 내포란 호수나 바다가 육지 안으로 휘어들어 간 부분을 뜻하는데, 충청남도 서북쪽 지역을 말합니다. 합덕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들의 숨결이 있는 곳, 130여 년 역사를 품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품고 있습니다. 천주교 박해 시대에는 순교의 장소였던, 한국 천주교회 발상지입니다.

건축

1890년대엔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 양촌 성당이라 불렀습니다. 1899년에 당시 초대 본당 주임이었던 퀴를리에 신부가 현재 땅을 120평 사들여 한옥 성당을 짓고 성당을 옮기면서 합덕성당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현재 존재하는 성당 건물은 1929년 페랭 신부가, 벽돌(현재도 있음)로 고딕 형식의 성당을 지은 것입니다. 성당은 100여 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정면에 종탑이 두 개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바깥에, 불에 구운 붉은 벽돌과 목재로 성당을 짓고, 창 둘레와 종탑 모서리는 회색 벽돌로 쌓았습니다. 창 아래와 종탑 각 면은 회색 벽돌로 마름모꼴 장식을 했습니다. 천장, 창문, 출입문이 아치형으로 멋스러움과 부드러움이 한층 돋보입니다.

참고

합덕성당 왼쪽에 예전에 사제관으로 쓰던 멋스러운 한옥 건물이 있습니다. 현재는 지난 이야기를 보존하는 역사관이 되었습니다. 뒤뜰에는 성직자 묘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묘지는 이 매스트르 신부 묘입니다. 매스트르 신부는 1852년 우리나라에 입국해 전교하다가 황무실 공소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성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신학생의 스승이었습니다. 두 번째 무덤은 홍병철 랑드르 신부 묘입니다. 1861년 우리나라에 입국, 전교하다가 병사했습니다. 세 번째 무덤은 백문필 페랭 신부인데 1921년부터 우리나라에 사셨는데 1950년에 피납되셨습니다. 현재 성당 건물을 지은 분입니다. 페랭 신부는 19508월 성모승천 대축일 전날 고해성사를 집전하다가 납치되었고, 시신은 현재 대전 사정공원 애국지사 묘지에 있습니다. 페랭 신부는 현재 6.25 순교자로 시복 대상에 올라가 있습니다. 네 번째 무덤은 심재덕 마르코 신부입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백문필 페랭 신부 보좌로 있다가 병사했습니다.

합덕 성당 뒤뜰 묘지

끝내며

오랜 역사를 간직한 합덕성당은 근대 문화유산으로,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속에서도 굳건히 신앙을 지켜온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합덕성당은 지역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보육원을 설립해 고아들을 양육했고, 유치원과 매괴 학교를 설립해 교육 활동에도 참여해 지역 발전에 공헌했습니다.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 일반인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는 곳이며,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천주교인뿐 아니라 사진작가들의 출사지로도 유명합니다. 합덕성당은 최근까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성직자 · 수도자를 배출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내포 순교자들의 신앙 열정이 합덕 평신도들에게 이어져 결실을 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19년 현재 사제 33, 수도자 80여 명을 배출해 성소의 못자리로서 교회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제나 수도자 성소의 길을 걷고 싶으신 분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멋진 인생 사진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합덕성당에 가셔서 그 기운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주소 : 당진시 합덕읍 합덕성당 222

전화 : 041-363-1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