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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지 순례

서울 도심에 있는 아름다운 성당 <중림동 약현 성당> – 유래, 경위, 건축 특징, 맺음말

by 황금빛 이삭 202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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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중림동 성당이라고도 부르는 약현 성당(藥峴聖堂)은 현재 서울시 중구 중림동에 있는 가톨릭교회입니다.

천주교는 우리나라에 선조 · 광해군 때 연경(燕京) 사신을 통해 서학(西學)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조선 천주교는 중국 북경교구(北京敎區)에 속했었는데 1831년에 조선교구(朝鮮敎區)로 독립했습니다. 188664일 조불수호통상조약(韓佛修好條約)이 체결되고 이듬해 530일에 효력이 발생해 선교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천주교는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서울에 천주교 신자 수가 늘어나자 1887년 잠배(紫岩) 순랫골(巡和洞)에 강당을 짓고 서민을 교육했습니다. 이 강당은 약현 성당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성당이 있는 언덕 이름이 서대문 밖 약현, 약초가 많아 약초고개, 약현이라고 불렸습니다.

 

경위

여기에 성당을 지은 것은, 중국 북경에서 서양인 신부에게 한국인 최초로 영세한 이승훈(李承薰) 집이 이곳과 가까웠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44명의 천주교 교우가 약현에서 가까운 서소문(西小門) 밖에서 순교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신부 코스트(E. G. Coste, 한국명: 고의선)가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했고, 당시 주임신부인 두쎄(Doucet) 신부가 감독했습니다. 코스트 신부는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으로 1868년 동아시아에 와서 홍콩 · 싱가포르 · 상해 · 만주 · 일본에서 건축 일에 종사했던 분이었습니다. 코스트 신부는 한불조약이 체결되기 전 1885년에 우리나라에 왔으며 조선교구 경리부(經理部)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약현성당 · 명동성당 서울권에서 천주교 관련 건축 설계와 감독을 했습니다. 두쎄 신부는 착공 직후부터 코스트 신부와 러시아인 건축가 사바틴(A.I.S. Sabatin) 조언을 받고, 밤낮없이 공사 감독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당시 약현 본당 관할구역은 서울 도성 외곽 지역뿐 아니라 경기도와 멀리 황해도 백천까지 넓었습니다. 명동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는 189110월 건축을 시작, 착공 1년 만인 1892년 약현 성당을 건축했습니다. 1898년에 세운 명동성당보다 6년 먼저 지어졌습니다. 약현 성당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 교회 건축물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습니다. 당시 교구장이신 뮈텔 주교는 견고한 성당을 지으려고 좋은 흙을 찾았는데, 가장 좋은 흙은 왕궁의 기와를 굽던 와서현(현재 국군 중앙성당) 흙이었습니다. 또 그곳은 새남터에서 순교한 김대건 신부,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남종삼 요한 성인, 최형 베드로 성인의 시신이 약 43년간 묻혀있던 곳입니다. 그곳 흙으로 세운 약현 성당은 바로 순교성인의 살과 피로 세워진 성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소문 형장을 바라보는 서소문 성지 기념 성당입니다. 약현 성당은 이후 건축한 벽돌식 성당의 원형(prototype)이 되었습니다.

 

종현(명동) 성당이 4 대문 안 선교를 담당했다면, 약현 성당은 4 대문 밖 선교를 담당했습니다.

이후 교회의 발전으로 약현 성당은 약 90개 성당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한국 전쟁 후 1954319일 서울 대목구와 가톨릭 자선회의 지원으로 본당 구내 가명학교 자리에 병상 62개 규모 성요셉의원을 개원했고, 5월에는 성요셉 간호고등기술학교를 세워 전문 인력 양성과 극빈자 진료에 힘썼습니다. 이후 이 학교는 1955년 가톨릭대 의학부와 부속병원인 성모병원이 되었습니다.

2007719일 중림동 성당의 명칭이 중림동 약현 성당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건축 특징

약현 성당은 성당 건축의 기본적인 형태와 공간을 갖추고 있으며, 번잡스러운 장식이 없고 장중하며 매우 아담합니다. 한국 최초의 양식 성당이고, 소규모 벽돌 조 서양식 성당의 표본으로 교회 건축사적 가치가 매우 큽니다.

 

맺음말

1891년 박해가 끝나자 교회 전통에 따라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본받으려고 서소문 성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약현 성당을 지었습니다. 중림동 약현 성당은 본래 한옥 공소였습니다. 천주교가 들어온 후 무수한 박해로 뿔뿔이 흩어져 숨어 살던 교우들이 도성 밖에서만 해도 수백이었습니다. 이에 제7대 조선대목구장 블랑 주교는 1887년 지금 중구 순화동 지역인 남대문 밖 수렛골에 집 한 채를 마련해 교리 강습을 위한 강당을 차렸는데, 이것이 약현 본당의 뿌리인 약현 공소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시간 날 때 약현 성당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도심에서 편안함과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가까이 계시는 분들은 산책 삼아 자주 가시는 것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