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배론은 마을 계곡이 ‘배 밑창을 닮았다’하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배론 성지는 박해를 피해서 숨어들어온 교우들이 모여 형성된 교우촌입니다. 교우들은 옹기와 화전를 구워 생활하며, 어려움 중에서도 하느님을 섬기고 서로 아끼며 살았습니다.
배론성지는 우리나라 1800년대 선조들의 신앙, 초기 교회 역사와 함께하는 천주교회의 의미 있는 땅입니다.
배론 성지 성요셉 신학당에서 신학생 여섯 명이 두 교수 신부의 지도를 받으며 사제 성소를 꿈꾸며 공부하고 기도했고, 황사영 알렉시오는 배론 토굴 속에서 신앙의 자유를 바라며 죽기를 각오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백서를 적었습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11년 6개월 동안 교우들을 위해 사목하던 중 배론에 머무셨고, 소명을 다한 후 배론에 묻히셨습니다.
성요셉 신학당
성요셉 신학당은 프랑스 선교사 메스트로 신부가 1855년에 시작했습니다. 이때 교우촌 회장 장주기 요셉이 자기 집을 신학당으로 봉헌했습니다. 푸르티에 신부(1856-1866)가 1856년부터 교장으로, 프티니콜라 신부(1862-1866)가 교수직을 맡았습니다. 신학 교육은 신학과와 라틴어과로 나뉘었고, 신학과에서는 신학, 수사학,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서양인 두 신부는 신학생들을 교육하면서 교리서 번역과 '라틴어-한국어-한문' 사전도 만들었습니다.
1866년 3월 2일, 서울에서 남종삼 요한을 체포하러 온 포졸들이 신학교에 갑자기 들이닥쳐 두 신부를 체포했고, 두 분은 서울 새남터에서 3월 11일에 순교했습니다. 장주기 요셉은 3월 30일 충남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했는데 그때 흰 무지개 다섯이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것을 사람들이 봤다고 전해집니다.
성 요셉 신학당은 한국 교회 최초의 신학교이면서 조선 최초 근대신학 교육 기관이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습니다.
황사영 백서 토굴
1801년 황사영은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8개월 동안 배론, 옹기굴을 가장한 토굴 속에 머물며 중국 북경 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명주 천에 쓴 이 편지 크기는 세로 40cm, 가로 62cm이며, 세필로 쓴 글자 수는 13,384자, 122행입니다. 첫째, 1~5행 인사말, 둘째, 6~32행 신유박해의 진행 과정, 셋째, 32~90행 순교자 열전, 넷째, 90~118행 교회 재건과 신앙 자유를 얻기 위한 5가지 방안, 다섯째, 119~122행 관면 요청과 맺음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백서가 중국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편지 심부름을 맡았던 황심 토마스가 그 해 9월 15일 배론에서 체포되어 10월 24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어 순교했습니다. 황사영은 황심 체포 후 9월 29일 배론에서 체포되어 1801년 11월 5일 대역부도의 죄로 서울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사 되었습니다. 황사영의 아내 정난주(정명련)는 제주도로, 두 살 된 아들 황경한은 추자도로, 어머니 이윤혜는 11월 6일 거제도로 귀양가게 되었습니다. 현재 배론에는 백서 원본은 로마 교황청 바티칸 민속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배론 성지에는 영인본이 있습니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 묘
배론 성지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사제가 된 최양업 토마스(1821-1861) 신부 묘가 있습니다. 최양업 신부 어머니는 이성례 마리아(1801-1840) 복자이고, 아버지는 최경환 프란치스코(1805-1839) 성인입니다.
최양업 토마스는 1836년 12월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최방제, 김대건과 함께 중국 마카오에서 신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1849년 4월 15일 중국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귀국 후 11년 6개월 동안 산간벽지 교우들을 방문하며 사목자로 살았습니다. 최양업 신부가 사목했던 구역은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등 5도로 6천여 명의 교우들과 공소 127개가 있었습니다. 1861년 6월 15일 경상도 사목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문경에서 과로로 선종했습니다. 그해 11월경 교구장 베르뇌 주교께서 당시 신학교가 있던 배론으로 이장했습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굳건한 신심과 영혼 구원을 위한 불같은 열심, 무한히 귀중한, 훌륭한 판단력으로 우리에게 그렇게도 귀중한 존재였습니다. 신부님은 12년 동안 거룩한 사제의 모든 본분을 지극히 정확하게 지킴으로써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서, 힘쓰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교구장 베르뇌 주교 추도사 중에서-
기도학교
이렇듯 선조들의 신앙이 남아 있기에 우리는 배론을 '기도의 땅’이라고 합니다. '기도의 땅’ 위에서 기도를 배우고, 기도하고 싶은 원주 교구 교우들과 전국의 수많은 분의 바람과 도움을 받아 '은총의 성모마리아 기도학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학교는 2018년에 원주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기획했고, 2020년 8월 15일에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지하 1층 연 면적 6,900㎡, 지상 3층 200석 규모의 성당 · 강당 · 식당, 2인실 86개, 4인실 10개 규모로 지었고 '성모님의 모범에 따라 누구나 기도하고, 누구나 기도를 배우는 기도의 집’으로서 그 기능을 수행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성모님처럼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모세처럼 우리나라를 위해, 우리 민족을 위해, 우리 사회를 위해,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특별히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억울한 사람들, 그리고 진리를 찾고 아름다운 이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2020년 8월15일 원주 교구장 조규만 바실리오 주교 봉헌식 강론 일부-
마무리
여러분, 배론 성지에 가보셨나요? 저는 배론 근처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혼자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기 힘들 때마다 베론성지에서 큰 위로와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최양업 신부 묘소 앞에 앉아 신부님 삶에 비추면, 별것도 아닌 것에 힘겨워하는 제 모습이 선명해져 마음을 다잡고 일어나곤 했습니다.
배론 성지에 가면, 순수한 영혼들의 기도 배움터 성요셉 신학당이 있고, 황사영이 8개월 동안 토굴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깨알같은 글씨로 백서를 기록한 불굴의 정신이 있고, 11년 6개월을 피땀 흘리며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목하셨던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 묘소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곳에서 어려움, 절망, 고통, 괴로움, 불안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배론 성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어느 때나 다 좋습니다. 가을빛에 물든 은행잎은 위로를 건네는 순교자들의 손짓 같습니다.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구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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