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천연 석굴인 죽림굴은 1986년 언양성당 김영곤 주임신부가 탐사 중에 발견했습니다. 간월 교우들과 충청도 일원, 영남 각 지역에서, 1839년 기해박해 이후 피난해 온 교우들이 모여 살던 곳입니다. 당시 천주교인에게 인정사정없이 잔혹했던 관아의 손길을 피해 더 안전한 곳을 찾던 사람들이 움막을 짓고 토기와 목기를 만들거나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했던 피난처입니다.
산 넘어 간월에서 포졸들의 움직임이 보이면 신자 100여 명이 한꺼번에 불을 피울 수 없었습니다. 교우들은 이곳에 숨어 지내면서 연기를 내지 않으려고 곡식을 구유에 넣어 물에 불려 생식하며 목숨을 부지했다고 합니다. 이 천연 석굴 대재 공소는 입구가 낮고 대나무와 풀로 덮여 있어 숨기에 적절했던 것입니다.
죽림굴 대재 공소는 폭 7m, 높이 1.2m 크기의 작은 동굴입니다. 언양에서 첫 공소인 간월 공소에 이어 두 번째 공소입니다. 현재 주소로는 경남 울산광역시 울주군 간월산 정상 가까이에 있습니다. 산 중에 있는 작고 낮은 굴 입구는 대나무와 풀로 덮혀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성인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고, 근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큰 굴입니다. 죽림 대재 공소는 다블뤼 신부와 샤스탕 신부가 1840년부터 1860년까지 사목을 담당했던 곳입니다. 최양업 신부가 1860년 경신박해 때 박해를 피해 3개월간 은신했습니다. 또 울산 장대에서 처형된 허인백, 이양등, 김종륜 3명의 순교자가 한때 이곳에서 머물렀습니다. 이후 병인박해와 경신박해의 여파로 교우들이 많이 체포되면서 100여 명의 신자들이 각지로 흩어져 대재 공소는 폐쇄되었습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은신처, 마지막 서한 발신지
최양업 신부는 죽림굴 대재 공소에서 <스승 신부들에게 보낸 1860년 9월 3일자 마지막 서한>을 작성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리브와 신부님과 르그레즈와 신부님께, 지극히 공경하고 경애하올 신부님께
먼저 두 분 신부님께 공동 서한을 보내 드리는 것에 대하여 용서를 청합니다. 이 작은 서한을 두 분께뿐 아니라 모든 경애하올 신부님들께 이렇게 한꺼번에 보내 드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박해의 폭풍을 피해 조선의 맨 구석 한 모퉁이에 갇혀서 교우들과 아무런 연락도 못 하고 있습니다. 벌써 여러 달 전부터 주교님과 다른 선교사 신부님들과도 소식이 끊겨, 그분들이 아직 살아 계시는지 아닌지조차 모릅니다. 이 서한이 중국에까지 전달될 수 있을는지도 의심됩니다….”
" ...... 우리를 재난에서 구원하소서. 엄청난 환난이 우리에게 너무도 모질게 덮쳐왔습니다…. 당신이 높은 데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을 대항하여 설 수가 없습니다. 지극히 경애하올 신부님들께서 열절한 기도로 우리를 위하여 전능하신 하느님과 성모님으로부터 도움을 얻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이것이 저의 마지막 하직 인사가 될 듯합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계속 추적하는 포졸들의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 불쌍하고 가련한 우리 포교지를 여러 신부님의 끈질긴 염려와 지칠 줄 모르는 애덕에 거듭거듭 맡깁니다. 금년에 저의 사목 순회 도중에 중단된 성무 집행의 연말 보고를 드립니다. 1,622명에게 고해성사를 주었고, 어른 203명에게 세례성사를 집전하였습니다. 신자들이 어른 임종자 13명에게 대세를 주었고, 예비자 398명이 등록하였습니다.
-지극히 겸손하고 순종하는 종, 조선 포교지 탁덕 최 토마스가 올립니다.”
최양업 신부는 죽림굴에서 사목 서한을 썼고, 미사를 집전했으며, 동래 지역의 예비신자들을 찾아가 세례를 주기도 했습니다. 생명의 위험, 배고픔, 병고 속에서도 복음 전파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1860년 경신박해 때 최양업 신부는 죽림굴에서 3개월 동안 숨어 지냈습니다.
결론
죽림굴이 있는 곳은 간월산 정상 가까이 험하고 인적이 드문 곳에 있습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복음 전파의 본거지로 삼을 만큼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지극했습니다. 죽림굴을 방문하고 나면, 어떻게 이렇게 누추하고 열악한 곳에서 신앙의 꽃을 피울 수 있었을까? 하고 놀랄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자유롭고 편하게 살면서도 복음 전파에의 열이 식어 냉담 교우들이 계속 늘어 나가고 있는 터라 안타깝기에 그지없습니다.
어려움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신앙을 지키신 그분들의 영성이 미지근한 우리 신앙에 불을 놓을지 모릅니다.
산이 험하지만 간월산 정상에 오르고 나면 끝없이 펼쳐진 억새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당신을 반기고 당신 마음을 빛나게 할 것입니다. 산을 좋아하는 분, 생활에서 신선함이 필요하신 분에게 죽림굴 방문을 추천합니다.
주소 : 44909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억새벌길 200-78 (이천리) 부산교구
'천주교 성지 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산교구 영적 고향 명례 성지 – 이런 곳입니다, 성지 시설, 마무리 (3) | 2024.12.03 |
---|---|
한국 천주교 창설과 함께 시작된 전주 – 여는 말, 치명자산 성당, 전주 교구 순교 성인과 교우 촌, 치명자산 성지, 성직자 묘역, 닫는 말 (3) | 2024.12.02 |
예부터 나무와 억새가 많았던 새남터 성당 – 소개, 기념관, 마치며 (3) | 2024.12.02 |
민주화의 성지 - 명동 성당, 성당의 우여곡절, 마무리 (4) | 2024.12.01 |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던 시절 그곳, 절두산 성지– 유래, 안내, 유해실, 성지 사용 문의, 순례 추천코스, 결론 (3) | 2024.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