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주교 성지 순례

조선시대 조세 보관 창고 터였던 곳에 지은 공세리 성당 – 소개, 드비즈 신부의 활약, 박물관, 마치며

by 황금빛 이삭 2024. 12. 8.
반응형

공세리 성당

소개

공세리 성지 성당은 2005년 한국관광공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한 곳입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충청 서남부 40개 마을에서 거둔 조세를 보관하던 창고였습니다. ‘공세리(貢稅里)’라는 이름은 조운(漕運) 제도와 관련이 깊습니다. 조운이란 조선시대 때 전국 각지에서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해당 지역 강변이나 해안에 설치한 창고, 조창(漕倉)에 모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일정한 시기에 선박에 실어 한양 경창(京倉)으로 운반하는 제도입니다. 공세리는 육지가 바다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지형[]으로, 조운의 중요한 길목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성당이 있는 높은 언덕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고 동쪽에 나루가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 조선 세종 때 공세곶창(貢稅串倉)을 설치해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보관했습니다. 중종 때 80칸의 조창을 짓고 공진창이라 했으며, 인조 때 조창을 보호하려고 돌로 창성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17세기 대동법 실시로 세금을 베나 돈으로 내거나 사선을 임대해 직접 경창에 운반하게 되어 조창 기능이 약화 되다가 19세기 고종 때 결국 폐지되었습니다. 공세리라는 이름도 공세곶 창고지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드비즈 신부의 활약

공세리에서만 39년간 사목한 드비즈 신부는 주변의 토지를 대량 매입해 신자들에게 싸게 소작을 주어 신자들의 기본적 경제생활을 돕고 교회의 재정을 튼튼히 했습니다. 또 고아원을 후원하고 성당 부설 학교를 세워 천주교회의 지역 기여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20년대에 들어서자 신자 수가 많이 늘었습니다. 드비즈 신부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건축가이자 공예가였습니다. 19229, 자신이 직접 설계한 고딕 양식의 성당과 사제관을, 중국인 기술자와 벽돌공 20여 명을 직접 지휘 감독하여 완공했습니다. 공세리 성당을 보려고 멀리서도 많은 구경꾼이 몰려왔습니다. 집을 지을 때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얹었던 한국의 전통 방식과 달리, 기초를 다진 후 사방에 벽부터 쌓는 것도 희한한 구경거리였습니다. 직접 가마를 만들고 벽돌을 구우려고 장작과 모래, 석회, 자갈, 골재를 실은 우마차가 계속 오갔습니다. 석공들의 돌을 다듬는 소리와 이를 구경하는 구경꾼들로 공세리 마을은 매일 장날처럼 떠들썩했습니다. 건물은 1922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완공 당시부터 공세리성당은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며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아산 지역의 명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성당 내부는 소박합니다. 제대 뒤 정중앙에는 베네딕토 성인상이 있습니다. 드비즈 신부는 성당을 지을 당시 베네딕토 성인 패를 묻고 3일간 기도한 다음 성당을 지어 별 탈 없이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고, 그 은덕에 감사하며 성인상을 모셨다고 합니다. 공세리 성당 주보 성인은 베네딕토입니다.

박물관

현양 탑 너머에 공세리성당과 단짝처럼 보이는 성지박물관이 있습니다. 200896일 개관한 성당 박물관입니다. 천주교 대전교구의 첫 감실과 공세리성당의 초대 · 3대 주임이었던 드비즈 신부의 유품이 있습니다. 1890년 공세리성당의 전신인 신창 간양골 성당이 설립된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교회 신앙의 못자리이자 순교의 터전이었던 내포교회 순교사와 순교자들의 일생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품도 있습니다. 조선에 파견되어 활동한 파리 외방 전교회의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땅 신부와 성녀 루이스 드 마리약, 박의서 · 박원서 · 박익서 3형제를 비롯 공세리 출신 순교자 32위의 유해도 있습니다. 드비즈 신부가 개발 전수한 이명래 고약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드비즈 신부는 이곳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 주었는데 그 비법을 이명래에게 전수하여 전국에 보급되었습니다. 박물관은 6·25전쟁의 아픔도 안고 있습니다. 공산군이 이곳에 쳐들어왔을 때 8대 주임 뷜토 오 신부는 양 떼를 두고 목자가 떠날 수 없다라고 피난을 마다하고 북으로 끌려가 순교했습니다.

마치며

공세리 성당은 성당 건물 자체가 매우 아름답고 경건해 신선한 감성을 불러일으킵니다. 성당에 들어서면 수령이 400여 년 가까이 되는 팽나무가 성당 입구에서 순례객을 맞이합니다. 오래된 나무들과 경관은 세속에 지친 우리 마음을 푸근하게 하고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저는 공세리성당의 진정한 이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 해봅니다.

공세리성당은 순교자들이 믿음을 증가한 터전이었고 창고 터가 헐리고 하느님의 집이 들어섰을 때 믿음을 선포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6·25전쟁 때는 양 떼를 사랑한 목자가 기꺼이 순교의 길을 택한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세월의 풍상을 견디며 공세리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한 고목과 나무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품고 담고 있기에 아름다운 곳이라 생각합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되찾고 싶다면 아름다운 공세리 성당을 찾아가 보세요.

 

주소 :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길 10

전화 : 041) 533-8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