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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순교복자 윤봉문 요셉 – 활동, 순교, 성지, 결론 성지 위에서 바라다 본 지 전경, 앞에 지세포 항이 보인다.순교복자 윤봉문 요셉 성지 입구활동복자 윤봉문 요셉(1852-1888)은 윤사우 스타니슬라오와 막달레나 둘째 아들로 경상북도 경주시 근처에서 태어났습니다. 윤봉문 가족은 1866년 병인박해로 재산을 몰수당한 뒤 양산으로 이사 갔다가 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거제도로 건너와 현재 경남 거제시 옥포동, 진목정에 정착했습니다. 윤봉문 부친 윤 스타니슬라오는 필묵 장사를 했는데, 붓 대롱 속에 ‘교리문답’을 감추고 다니면서 몰래 전교했습니다. 거제도로 이주한 뒤진 요한 가족에을 입교시켰으며, 이 인연으로 윤봉문 요셉은 후에 진 아녜스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윤봉문 요셉은 형과 함께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전교에 힘썼습니다. 경상도를 담당한 대구 .. 2024. 12. 8.
조선시대 조세 보관 창고 터였던 곳에 지은 공세리 성당 – 소개, 드비즈 신부의 활약, 박물관, 마치며 소개공세리 성지 성당은 2005년 한국관광공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한 곳입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충청 서남부 40개 마을에서 거둔 조세를 보관하던 창고였습니다. ‘공세리(貢稅里)’라는 이름은 조운(漕運) 제도와 관련이 깊습니다. 조운이란 조선시대 때 전국 각지에서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해당 지역 강변이나 해안에 설치한 창고, 조창(漕倉)에 모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일정한 시기에 선박에 실어 한양 경창(京倉)으로 운반하는 제도입니다. 공세리는 육지가 바다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지형[곶]으로, 조운의 중요한 길목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성당이 있는 높은 언덕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고 동쪽에 나루가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 조선 세종 때 공세곶창(貢稅串倉)을 설치해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 2024. 12. 8.
한국 최초의 순교 터 – 전주 전동성당, 건축 과정, 건축 양식, 마치는 글 전주 전동성당전주에는 조선시대 때 전라감영과 진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동은 자연히 순교지가 되었으며, 전동성당은 바로 천주교인들이 처형되었던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곳에 있으며, 한국 천주 교회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첫 순교 터로서 1791년 12월 8일에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복자 권상연 야고보가 순교한 곳입니다. 윤지충과 권상연이 유교식 조상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웠던 ‘진산사건’으로 순교한 곳입니다. ‘호남의 사도’로 불렸던 유항검과 그 동료들이 신유박해(1801) 때 순교한 곳입니다. 1801년 10월 24일에는 이곳에서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 유관검이 능지처참 형으로 순교, 김유산 토마스와 이우집은 참수당했습니다. 진산사건.. 2024. 12. 7.
마음의 안식처, 한티 성지 – 의의, 교우촌, 무명 순교자 묘지, 마무리 복원한 한티 성지 교우촌한티 성지 영성관의의한티 성지는 조정의 박해를 피해 살던 한티마을에서 수십 명의 신자들이 무더기로 처형된 비극 현장입니다. 한티에는 군데군데 교우들의 묘가 흩어져 있습니다. 언제부터 한티에 교우들이 살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인근 신나무 골과 비슷하게, 1815년 을해 박해와 1827년 정해 박해 후 대구 감옥에 갇힌 신자들의 가족들이 비밀리에 연락하려고 마을에 와서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북쪽으로 24km쯤 떨어진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에 있습니다. 서쪽 가산과 남동쪽 주봉인 팔공산 사이에 있으며 가산에서 동쪽으로 7km 떨어진 깊은 산 중턱에 있습니다. 해발 600m를 넘는 이 심심산골은 천혜의 은둔지라 할 수 있습니다. 전국에 많은 성.. 2024. 12. 7.
강원도 최초 성당, 천주교 최초 교우촌 – 풍수원 성당, 성당 건물, 기타, 맺는말 풍수원 성당 모습풍수원 성당 성체 현양 대회풍수원 성당풍수원 성당은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면서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 성당입니다. 강원 특별자치도 횡성군 서원면에 있습니다. 서울 약현성당, 서울 명동대성당, 완주 되재 성당에 이어 4번째로 지어진 성당입니다. 풍수원성당은 1801년 신유박해나 1802년 아니면 1803년 무렵에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 베드로를 중심으로 40여 명의 신자들이 8일 동안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 정착한 곳으로, 한국 천주교 최초 교우촌으로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후 고종 3년 1866년 병인년 박해와 고종 8년 1871년 신미양요 때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림이 울창해 관헌들의 눈을 피하기에 좋은 곳이라 여겨 교우촌을 이루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 2024. 12. 6.
성소 못자리 합덕성당 – 합덕성당의 역사적 의의, 건축, 참고, 끝내며 합덕성당의 역사적 의의합덕성당 혹은 당진합덕성당은 충남 당진시 합덕읍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습니다. 충남 당진은 신라 때 당나라로 향하던 관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당진'이라 불렸습니다. 중국으로 건너가는 문이었던 당진은 천주교 성지가 많아서 순교자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성지순례 해도 좋은 곳입니다. 조선 천주교 신도 반은 충청도에 살았고 반은 천주교 중심지 이곳 당진 내포 지방 사람들이었습니다. 내포란 호수나 바다가 육지 안으로 휘어들어 간 부분을 뜻하는데, 충청남도 서북쪽 지역을 말합니다. 합덕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들의 숨결이 있는 곳, 130여 년 역사를 품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품고 있습니다. 천주교 박해 시대에는 순교의 장소였던, 한국 천주교회 발상지입니다. 건축1890년대엔 충청남도 예산군 .. 2024.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