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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대정 성지 아름다운 신앙인 - 정난주 마리아, 아들 경한, 남편 황사영, 마무리 정난주 마리아정난주 마리아는 영조 49년 1773년에 남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나주(羅州), 아버지는 정약현이고, 어머니는 경주 이씨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정약종, 정약전, 정약용은 정난주의 작은아버지들입니다. 정난주 가문은 조선 시대에 일찍 서학을 믿었고 정난주도 작은아버지 정약전을 통해 천주교를 믿게 되었습니다. 고모부인 이승훈에게‘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1791년 황사영 알렉시오와 결혼했습니다. 황사영과 정난주 가문은 친인척지간으로 매우 친밀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정난주는 시어머니와 함께 간난 아들 경한을 데리고 친정인 경기도 남양주 마재로 피신했습니다. 남편 황사영은 충청북도 제천(提川) 배론 골짜기로 피신해 백서(帛書)를 써서 북경(北京)에 있는.. 2024. 12. 5.
감곡 매괴 성모 순례지 – 감곡 성당, 임 가밀로 신부, 매괴 성모상, 마치며 감곡성당감곡성당은 1896년 설립된 충청북도 최초의 성당이며, 한국 천주교의 순례지 중 한 곳으로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에 있습니다. 수원교구 남양성모성지와 더불어 국내 성모 성지로 유명합니다. 아직 순례지일 뿐 공식적으로 성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교우들 사이에서는 성지와 대등한 수준입니다. 매괴(玫瑰)는 해당화를 가리키는 한자어이며 한국 천주교 초창기에 묵주를 부르던 말입니다.임 가밀로 신부감곡성당 초대 주임 임 가밀로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 출신입니다. 1893년 사제서품을 받은 다음 해 유서 깊은 교우촌, 신학당이 있던 여주 부엉 골에 부임했습니다. 하지만 성당이 북쪽 끝에 있고 산에 있는 마을이어서 옮길 생각이었습니다. 임 가밀로 신부는 사목 방문차 여주를 지나서 장호원에 가다가 산 .. 2024. 12. 4.
정해 박해의 시발점 – 곡성현 객사(옥 터 성지), 곡성 성당, 결론 곡성현 객사(옥 터 성지)곡성지방에 복음이 전해진 때는 을해 박해를 피해 강원도와 경상도에서 아래로 내려온 교우들이 현재 승법리인 덕실마을과 현재 미산리인 미륵골에 정착 하면서부터입니다. 교우들은 생계와 신앙생활 유지 수단으로 가마터를 열고 옹기를 구워 팔며 신분을 은폐하며 살았습니다. 1827년 정해년 2월 어느 날 덕실마을 가마를 여는 축하연 자리에서 신유박해 때 순교한 한덕운 토마스의 아들 한백겸이라는 예비 신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평소 주사가 심하고 포악했는데 이날도 잔뜩 취해 행패를 부리고 주막 여주인에게 손찌검했습니다. 평소 좋지 않은 감정이 있던 남편 전 씨가 홧김에 천주교 서적 등 물증을 가지고 가 곡성 현감 성경묵에게 한백겸과 몇몇 신자들을 고발했습니다.공명심이 앞섰던 곡성 현감과 .. 2024. 12. 4.
축복받은 땅 나바위 - 성당, 내부, 외부, 맺음말 성당나바위성당은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 있습니다. 1845년 10월 12일 밤 김대건 신부와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조선 교우 11명이 조선에 도착해 첫발을 내디딘 축복의 땅입니다. 조선 천주교회에 입성한 최초의 한국 사제 김대건 신부와 선교사들의 강한 열망과 열정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내부성당 내부는 남녀 자리를 구분한 칸막이 기둥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유교 관습에 따라 신자 자리를 남녀로 구분한 것입니다. 한때 화산 성당이라 했으나 1989년부터 본래 이름을 따라 나바위성당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우암 송시열이 이 산이 너무 아름다워서 '화산(華山)'이라는 글자를 바위에 새겼고, 그 후 화산 바위가 있.. 2024. 12. 3.
마산교구 영적 고향 명례 성지 – 이런 곳입니다, 성지 시설, 마무리 이런 곳입니다.명례성지는 영남의 젖줄 낙동강이 바라다보이는 언덕, 경남 밀양시 하남읍 명례안길에 있습니다. 마산교구의 영적 고향이며 신앙의 원천이며, 밀양과 김해를 잇는 나루가 있던 곳입니다. 소금 장수였던 신석복 마르코가 이곳에서 출생했습니다. 신석복 마르코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대구 포졸들에게 붙잡혀 양력 3월 31일 대구 감영에서 순교했습니다. 복자 신석복 마르코는 명례에서 진해와 웅천을 오가며 소금과 누룩을 팔았는데 살림이 넉넉했습니다. 그는 신앙을 지키려고 숨어 살던 신자들을 돕기도 하고, 천주교 실정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소금과 누룩을 파는 것이 생계 수단이었으나 박해 시대에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핑계 삼아 장사를 했을 것입니다.웅천 장터에서 돌아오다 나루터에서 포졸들에게 붙잡혀 대구로 압.. 2024. 12. 3.
한국 천주교 창설과 함께 시작된 전주 – 여는 말, 치명자산 성당, 전주 교구 순교 성인과 교우 촌, 치명자산 성지, 성직자 묘역, 닫는 말 여는 말한국 천주교회의 창설과 함께 전주 지역의 천주교가 시작되었습니다. 1784년 가을, 전주 지역 양반인 유항검 아우구스티노는 경기도 양근에 사는 권일신을 대부로 삼고,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은 후 귀향하여 호남 지방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1784년 겨울, 진산 양반인 윤지충이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입교하고, 1787년에 정약전을 대부로 하여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전주 지역 천주교는 전주와 현재 충남 지역인 진산을 중심으로 뿌리내렸습니다. 하지만 신해 박해, 신유박해, 정해 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 때마다 희생자가 끊이지 않아 전주 지역은 순교의 땅이 되었습니다. 치명자산 성당 안치명자산 성당성직자 묘역을 지나 해발 300m 산 정상에 오르면 바위 암벽 위에 세운 작은 성당이 보입니.. 2024.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