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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만 억새가 반기는 곳, 천연 석굴 죽림굴 - 소개,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은신처이며 마지막 서한 발신지, 결론 소개천연 석굴인 죽림굴은 1986년 언양성당 김영곤 주임신부가 탐사 중에 발견했습니다. 간월 교우들과 충청도 일원, 영남 각 지역에서, 1839년 기해박해 이후 피난해 온 교우들이 모여 살던 곳입니다. 당시 천주교인에게 인정사정없이 잔혹했던 관아의 손길을 피해 더 안전한 곳을 찾던 사람들이 움막을 짓고 토기와 목기를 만들거나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했던 피난처입니다. 산 넘어 간월에서 포졸들의 움직임이 보이면 신자 100여 명이 한꺼번에 불을 피울 수 없었습니다. 교우들은 이곳에 숨어 지내면서 연기를 내지 않으려고 곡식을 구유에 넣어 물에 불려 생식하며 목숨을 부지했다고 합니다. 이 천연 석굴 대재 공소는 입구가 낮고 대나무와 풀로 덮여 있어 숨기에 적절했던 것입니다. 죽림굴 대재 공소는 폭 7m, 높이 .. 2024. 12. 2.
예부터 나무와 억새가 많았던 새남터 성당 – 소개, 기념관, 마치며 소개‘새남터’는 나무와 억새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부터 이곳에 나무와 억새가 많았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까지 말 그대로 울창한 숲이었습니다. 한자로 음역하여 사남기(沙南基)라고도 합니다. 조선 시대 때는 군사들의 연무장이었고, 대역죄인들, 국사범을 처형하던 곳이었습니다. 대표 예는, 사육신(死六臣)의 처형을 들 수 있는데, 세조 2년 단종 복위를 꾀하던 성삼문 등 여섯 신하가 여기에서 처형되었습니다. 4대 박해 동안 천주교 교우들이 순교로 주님을 증거 한 영광의 땅이기도 합니다. 그분들의 순교로 한반도에 찬란한 신앙의 꽃이 피어날 수 있었습니다. 4대 박해 동안 순교한 성직자는 모두 열네 분입니다. 그리고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급 평신도 세 분이 이곳에서 순교하셨습니다. 1984.. 2024. 12. 2.
민주화의 성지 - 명동 성당, 성당의 우여곡절, 마무리 명동 성당원래 명동 성당이 있는 언덕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 토마스의 집이었습니다. '명례방'이라 불렸던 이곳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전례를 행했던 곳입니다.김범우 토마스는 자기 집에서 이승훈 베드로, 정약전 안드레아와 함께 천주교 서적을 연구하고 공소 예식을 드렸습니다. 포도청이 이를 적발했을 때 다른 사람은 명문가 자제라서 적당히 훈방 조치했지만, 김범우는 중인 계급이라 고문받고 귀양 가다가 사망했습니다. 그 후 1886년 조선에서 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허용했던, 조불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때부터 성당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명동 성당입니다.성당의 우여곡절명동 성당은 우여곡절이 많습니다.성당을 지을 때 성당의 아래 왕실 어진을 모시는 영희전(永禧殿)이 있었기에 “풍수상 곤란하다."라고.. 2024. 12. 1.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던 시절 그곳, 절두산 성지– 유래, 안내, 유해실, 성지 사용 문의, 순례 추천코스, 결론 유래조선 시대 절두산은 교통의 요지였고 흉년에 가난한 백성을 구제했던 진휼, 병사들이 훈련했던 장소, 제사를 지내던 곳, 양화진 동쪽 봉우리입니다. 원래 가을 두, 누에의 머리 형상이어서 잠두봉이라 불렀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에서 수없이 많은 천주교도가 참수형으로 목 잘려 죽은 곳이라는 의미로 '절두산'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안내흥선 대원군은 천주교 박해령을 내렸는데, 이때 살아남은 프랑스 선교사 리델 신부가 조선을 탈출, 청나라로 건너가 조선 교회의 상황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로즈 제독 프랑스 함대가 1866년 9월과 10월 두 차례 조선에 침입했습니다. 조선 정부는 프랑스 함대와 교전 후 1866년 10월 23일부터 천주교 신자들을 새남터나 절두산에서 주로 처형했습니다. 그 이유는 9월에.. 2024. 12. 1.
기도의 땅 제천 배론 성지 – 유래, 성요셉 신학당, 황사영 백서 토굴,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 묘, 기도학교, 마무리 유래배론은 마을 계곡이 ‘배 밑창을 닮았다’하는 데서 유래했습니다.배론 성지는 박해를 피해서 숨어들어온 교우들이 모여 형성된 교우촌입니다. 교우들은 옹기와 화전를 구워 생활하며, 어려움 중에서도 하느님을 섬기고 서로 아끼며 살았습니다. 배론성지는 우리나라 1800년대 선조들의 신앙, 초기 교회 역사와 함께하는 천주교회의 의미 있는 땅입니다.배론 성지 성요셉 신학당에서 신학생 여섯 명이 두 교수 신부의 지도를 받으며 사제 성소를 꿈꾸며 공부하고 기도했고, 황사영 알렉시오는 배론 토굴 속에서 신앙의 자유를 바라며 죽기를 각오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백서를 적었습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11년 6개월 동안 교우들을 위해 사목하던 중 배론에 머무셨고, 소명을 다한 후 배론에 묻히셨습니다.성요셉 신학당성요셉 신.. 2024. 12. 1.
서울 도심에 있는 아름다운 성당 <중림동 약현 성당> – 유래, 경위, 건축 특징, 맺음말 유래중림동 성당이라고도 부르는 약현 성당(藥峴聖堂)은 현재 서울시 중구 중림동에 있는 가톨릭교회입니다. 천주교는 우리나라에 선조 · 광해군 때 연경(燕京) 사신을 통해 서학(西學)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조선 천주교는 중국 북경교구(北京敎區)에 속했었는데 1831년에 조선교구(朝鮮敎區)로 독립했습니다. 1886년 6월 4일 조불수호통상조약(韓佛修好條約)이 체결되고 이듬해 5월 30일에 효력이 발생해 선교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천주교는 크게 확장되었습니다.서울에 천주교 신자 수가 늘어나자 1887년 잠배(紫岩) 순랫골(巡和洞)에 강당을 짓고 서민을 교육했습니다. 이 강당은 약현 성당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성당이 있는 언덕 이름이 서대문 밖 약현, 약초가 많아 약초고개, 약현이라고 불렸습니다.  경위여기에 성.. 2024.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