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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지 순례25

마음의 안식처, 한티 성지 – 의의, 교우촌, 무명 순교자 묘지, 마무리 복원한 한티 성지 교우촌한티 성지 영성관의의한티 성지는 조정의 박해를 피해 살던 한티마을에서 수십 명의 신자들이 무더기로 처형된 비극 현장입니다. 한티에는 군데군데 교우들의 묘가 흩어져 있습니다. 언제부터 한티에 교우들이 살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인근 신나무 골과 비슷하게, 1815년 을해 박해와 1827년 정해 박해 후 대구 감옥에 갇힌 신자들의 가족들이 비밀리에 연락하려고 마을에 와서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북쪽으로 24km쯤 떨어진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에 있습니다. 서쪽 가산과 남동쪽 주봉인 팔공산 사이에 있으며 가산에서 동쪽으로 7km 떨어진 깊은 산 중턱에 있습니다. 해발 600m를 넘는 이 심심산골은 천혜의 은둔지라 할 수 있습니다. 전국에 많은 성.. 2024. 12. 7.
강원도 최초 성당, 천주교 최초 교우촌 – 풍수원 성당, 성당 건물, 기타, 맺는말 풍수원 성당 모습풍수원 성당 성체 현양 대회풍수원 성당풍수원 성당은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면서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 성당입니다. 강원 특별자치도 횡성군 서원면에 있습니다. 서울 약현성당, 서울 명동대성당, 완주 되재 성당에 이어 4번째로 지어진 성당입니다. 풍수원성당은 1801년 신유박해나 1802년 아니면 1803년 무렵에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 베드로를 중심으로 40여 명의 신자들이 8일 동안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 정착한 곳으로, 한국 천주교 최초 교우촌으로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후 고종 3년 1866년 병인년 박해와 고종 8년 1871년 신미양요 때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림이 울창해 관헌들의 눈을 피하기에 좋은 곳이라 여겨 교우촌을 이루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 2024. 12. 6.
성소 못자리 합덕성당 – 합덕성당의 역사적 의의, 건축, 참고, 끝내며 합덕성당의 역사적 의의합덕성당 혹은 당진합덕성당은 충남 당진시 합덕읍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습니다. 충남 당진은 신라 때 당나라로 향하던 관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당진'이라 불렸습니다. 중국으로 건너가는 문이었던 당진은 천주교 성지가 많아서 순교자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성지순례 해도 좋은 곳입니다. 조선 천주교 신도 반은 충청도에 살았고 반은 천주교 중심지 이곳 당진 내포 지방 사람들이었습니다. 내포란 호수나 바다가 육지 안으로 휘어들어 간 부분을 뜻하는데, 충청남도 서북쪽 지역을 말합니다. 합덕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들의 숨결이 있는 곳, 130여 년 역사를 품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품고 있습니다. 천주교 박해 시대에는 순교의 장소였던, 한국 천주교회 발상지입니다. 건축1890년대엔 충청남도 예산군 .. 2024. 12. 6.
부산교구 조씨 형제 묘 – 창녕 조씨 형제, 순교, 묘지 단장, 결론 창녕 조씨 형제부산시 강서구 생곡동 배씨(裵氏) 가문 선산에는 조씨(曹氏) 성을 가진 형제의 묘가 있습니다. 순교자 조씨 형제는 경남 김해 삼방동 출신으로 청년 조석빈과 조석증입니다. 형제 유해가 문중 선산에 묻히지 못하고 선산을 앞에 둔 배 씨 선산에 묻혀 있습니다. 석빈과 석증 형제는 뼈대 있는 유교 집안이었던 창녕 조씨 가문에서, 부친 조대연의 셋째와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조씨 형제는 나이와 모습이 달랐지만 둘 다 학문과 인품이 뛰어났습니다. 박해 시대에 가재와 전답을 몰수당하고, 생곡 마을 정삼품 통정대부 배정문의 동서 학당에 은신하면서, 유학과 서학을 비교 연구했습니다. 한문 성경을 감춘 나무 상자를 메고 양반 집안을 찾아다니면서 천주학을 전교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순교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 2024. 12. 6.
호남지역 천주교 발상지, 전주 초남이 성지 – 유항검, 활동, 순교, 맺음말 유항검 초남이 성지는 '호남의 사도'라 불리는 한국 천주교회 초기 교회 지도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고향이며 호남지역 천주교회의 발상지입니다.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 있으며 천주교 성지로 유항검과 그의 가족이 살았던 생가터입니다. 유항검은 1784년 이승훈에게 전라도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1756년 전주 초남이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유항검은 문벌만 좋은 양반이 아니라, 줄잡아 15,000마지기가 넘는 토지를 소유한 호남의 큰 부자였습니다. 유항검의 토지는 금구, 김제, 만경, 여산 등 10개 고을에 있었고, 초남리에서 남서쪽 용지며 들판은 거의 그의 땅이었습니다. 유항검은 1784년 늦가을에 양근의 권철신 집에서 권철신과 그 문하생들이 서학을 탐구하고 있다는 .. 2024. 12. 5.
제주도 대정 성지 아름다운 신앙인 - 정난주 마리아, 아들 경한, 남편 황사영, 마무리 정난주 마리아정난주 마리아는 영조 49년 1773년에 남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나주(羅州), 아버지는 정약현이고, 어머니는 경주 이씨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정약종, 정약전, 정약용은 정난주의 작은아버지들입니다. 정난주 가문은 조선 시대에 일찍 서학을 믿었고 정난주도 작은아버지 정약전을 통해 천주교를 믿게 되었습니다. 고모부인 이승훈에게‘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1791년 황사영 알렉시오와 결혼했습니다. 황사영과 정난주 가문은 친인척지간으로 매우 친밀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정난주는 시어머니와 함께 간난 아들 경한을 데리고 친정인 경기도 남양주 마재로 피신했습니다. 남편 황사영은 충청북도 제천(提川) 배론 골짜기로 피신해 백서(帛書)를 써서 북경(北京)에 있는.. 2024.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