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던 시절 그곳, 절두산 성지– 유래, 안내, 유해실, 성지 사용 문의, 순례 추천코스, 결론
유래조선 시대 절두산은 교통의 요지였고 흉년에 가난한 백성을 구제했던 진휼, 병사들이 훈련했던 장소, 제사를 지내던 곳, 양화진 동쪽 봉우리입니다. 원래 가을 두, 누에의 머리 형상이어서 잠두봉이라 불렀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에서 수없이 많은 천주교도가 참수형으로 목 잘려 죽은 곳이라는 의미로 '절두산'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안내흥선 대원군은 천주교 박해령을 내렸는데, 이때 살아남은 프랑스 선교사 리델 신부가 조선을 탈출, 청나라로 건너가 조선 교회의 상황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로즈 제독 프랑스 함대가 1866년 9월과 10월 두 차례 조선에 침입했습니다. 조선 정부는 프랑스 함대와 교전 후 1866년 10월 23일부터 천주교 신자들을 새남터나 절두산에서 주로 처형했습니다. 그 이유는 9월에..
2024. 12. 1.
전남 나주 순교자 성당 – 경당, 네 분의 믿음과 삶, 박해와 나주, 기타, 헨리 대주교 기념관, 카리타스 수녀회 역사 기념관, 무학당 주춧돌, 마치며
경당나주성당 안에 있는 순교자 기념 경당은 나주에서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이춘화 베드로와 1872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강영원 바오로, 유문보 바오로, 유치성 안드레아, 네 분의 믿음과 삶을 기리고자 세운 무덤 경당입니다.네 분의 믿음과 삶1. 이춘화 베드로공주 태생으로 나주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되어 33세 때인 1839년 기해박해 때 나주에서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읍내 감옥에서 순교했습니다.2. 강영원 바오로충청도 홍산 태생입니다. 부모가 홍산에서 순교한 뒤 전북 용담으로 이사했다가 정읍으로 갔습니다. 1871년 11월 23일 정읍에서 체포되었고 나주로 압송되었습니다. 체포 당시 강영원은 신발도 없이 눈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어떤 아전이 버선을 벗어 그에게 주려고 하자, 포악한 포교..
2024. 11. 29.